창광(김성태) 순환상생상극 생장성멸 희기신 상생상극
명리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명리학을 공부하는 목적?
근래에는 명리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때에 맞춰서 할 일을 찾는 거고, 옛날에는 명리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뭐냐고 이렇게 보면 주의할 점을 찾는 것처럼 되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주의할 점을 찾는 게 아니라 할 일을 찾는 것을 말하죠.
옛날에는 통변하고 그럴 때 무슨 문제가 있어서 해결하는 것처럼 말했어요. 그렇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할 일을 찾는 것으로 요즘은 명리학을 공부하는 목적을 잡는 게 좋죠.
이것을 근사한 목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잖아요. 부귀빈천을 가려서 세상의 주인은 누구라고, 뭐 이런 거 있잖아요.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래?”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살래’를 연구하는 학문이니까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되겠죠.
그런데 내용에 학과가 많아요. 음양, 오행, 육신, 격국이라는 네 가지 학과가 있는데, 각각의 학습 목적을 정해서 공부하면 좋죠.
그런데 그 학습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잖아요.
오행을 공부해서 육신처럼 얘기하고, 육신을 공부해서 오행처럼 얘기하고, 일간 하나로 사주 보는 법이 있다는 것, 신왕신약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것, 현침살이 있어서 심장이 어떻게 된다는 것, 백호대살이 있어서 호랑이가 물어간다는 것, 있지도 않은 호랑이를 왜 찾는지 모르겠지만요. 이런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명리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나에게 딱 물어보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사주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운에서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는 것이다.”
‘무엇을’이라는 것은 직업의 종목이잖아요. ‘어떻게’라는 것은 그 직업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이잖아요.
내가 세탁소를 한다. 이것이 ‘무엇을’입니다. 그 세탁소를 어떻게 운영한다. 이것이 ‘어떻게’입니다.
‘무엇을 어떻게’라는 것을 보는 것이고, 운에서는 지금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는 겁니다.
이렇게 설명할 것 같아요.
오행을 공부하는 목적
오행과 육신이 있으면 우선 오행을 학습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죠.
오행의 상생상극을 학습하는 목적?.
아마 이럴 것 같은데요.
“오행의 용도와 사용 방법을 터득한다.”
터득하는 것은 학습이고, 오행의 용도와 사용 방법을 아는 것이 오행을 공부하는 목적이라는 뜻이죠.
오행의 상생상극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순환상생상극입니다.
순환상생상극으로 공부하는 것은 때에 맞게 어떻게 하느냐는 얘기예요. 때에 맞게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항상 때에 맞게 해야 하잖아요. 때에 맞지 않으면 병이 되고 때에 맞으면 약이 되는 거잖아요. 때에 맞게 사는 방법을 순환상생상극으로 얘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수생목, 목생화,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를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는 만물의 생장성멸입니다.
생장성멸도 상생상극이라는 뜻입니다. 만물의 생장성멸로 학습하는 것은 물건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이 7월을 지나 8월, 9월이라면 갈대 채취해다가 발이나 빗자루를 만드는 때잖아요. 이렇게 물건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얘기죠.
만물의 생장성멸에는 반드시 ‘때’라는 순환상생의 개념도 들어가 있습니다.
물건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만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희기신상생상극입니다.
희기신상생상극은 자기의 업무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뜻입니다.
크게 말하면 때에 맞게 만물을 사용하는데, 그것을 나의 재능과 특기로 만드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보는 것입니다.
어떤 물건이 있습니다. 그 물건은 아무 때나 나오는 게 아니라 때에 맞춰서 나옵니다. 그 물건을 사용하다 보면 그것이 내 특기가 됩니다. 업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희기신은 업무 능력, 만물의 생장성멸은 물건 사용 방법, 순환상생상극은 때에 맞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세 가지를 한꺼번에 통변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때에 맞게 물건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그것을 자신의 업무 능력과 특기로 만든다.”
이것이 오행 공부를 하는 목적이 됩니다
순환상생은 시간 관리 방법이고, 만물의 생장성멸은 물건을 사용하는 방법이며, 희기신은 그것을 나의 업무 능력과 특기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나는 발짜는 것을 특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자월에서 태어났다면 나의 종교적 신념과 인문적 신념으로 말과 글을 다루는 것을 특기화하겠다는 해석도 할 수 있습니다.
때에 맞고, 만물에 맞으며, 나에게 맞아야 합니다.
시간과 물건과 나, 세 가지가 한꺼번에 들어 있습니다.
오행 공부는 시간인 순환상생상극, 물건인 만물의 생장성멸, 나의 능력인 희기신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기다려야 할 때와 나아가야 할 때를 찾는 학문인가
그러면 오행의 흐름을 통해 내가 기다려야 할 때와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때를 알 수 있을까요?
그런 것은 없죠.
그런 감각조차도 없습니까?
그런 것은 없죠. 지금 질문은 명리학의 내용이 아닙니다.
‘기다린다’는 표현은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죠. 명리학에서 무엇을 기다립니까? 그런 것은 감상문을 쓸 때 하는 얘기입니다.
쉽죠? 얼마나 쉬워요. 딱 이해됐어요.
여러분이 수생목을 공부한다면 시간으로는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만물의 수생목에는 계을, 계갑, 임을, 임갑 등이 있잖아요. 이것은 물건을 다루는 방법입니다.
그것이 계수는 희신이고 을목은 기신인 경우도 있잖아요. 희신과 기신은 나의 능력을 말합니다.
희기로 말하면 나의 능력이고, 만물로 말하면 물건을 다루는 방법이며, 시간으로 말하면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것입니다.
“때에 맞게 만물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면 나의 재능이 된다.”
이것이 나중에는 적성이 됩니다.
그런데 순환상생을 희기신처럼 얘기하고, 희기신을 순환상생처럼 얘기하면서 뒤죽박죽 섞어버리잖아요.
그것은 선생님을 잘못 만났거나 혼자 독학하거나, 시도 때도 없이 아무렇게나 얘기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겠죠.
선생님을 잘 만나고 덕 높은 선생님을 만나서 오행의 상생상극을 세 과목으로 구분하여 공부하시면 됩니다.
상식적이에요. 그래도 불만이 있으세요?
아니요. 불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럼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해서 학습하는 것이죠?
그래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금생수와 수생목의 사례
제가 자월 임수에 태어났잖아요. 그렇죠?
그러면 먼저 금생수를 하고, 금생수한 것을 수생목으로 풀어내야 하잖아요.
금생수를 순환상생상극으로 말하면 겨울이 오기 전에, 겨울을 준비하려면 가을부터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농사를 지으라는 것인가요?
거두어들이고 있는 것을 가져다가 쓰라는 것이 금생수입니다. 그런 뜻을 의미합니다.
그것을 물건으로 보면 신임이예요. 완성된 제품과 상품을 취급하라는 뜻입니다.
노자와 장자의 말씀은 우리가 완성품으로 여기잖아요. 그렇죠? 그러나 김성태의 말은 아직 미완성이잖아요.
그러한 완성품을 취급하는 능력을 계속 쌓는 것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희기신입니다.
희기신으로 얘기할 것인지, 만물의 생장성멸로 얘기할 것인지, 순환상생으로 얘기할 것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언제?’라고 물어보면 순환상생으로 말합니다.
‘무엇을?’이라고 물어보면 만물의 생장성멸과 상생상극으로 말합니다.
‘잘할 수 있어? 할 수 있어?’라고 물어보면 희기신상생상극으로 말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고 생각하고 통변하면 무리가 없습니다.
그러면 물을 달라는 손님에게 물을 주게 되죠.
이런 방식으로 공부하지 않으니까 물을 달라는 손님에게 칼을 주고, 칼을 달라는 손님에게 공을 주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봄에는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키운다고 하고, 여름에는 키워야 하는데 심는다고 하고, 가을에는 거둬야 하는데 저장한다고 하면 안 되잖아요.
때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언제 잘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치를 모르는 손님들은 “언제 잘됩니까?”라고 물어보러 옵니다.
이치를 아는 손님들은 ‘언제’를 붙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봅니다.
명리학은 언제 잘되느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과 방식으로 해야 내가 되는지를 희기신에서 찾으면 됩니다.
결국 명리학은 용신과 희기신입니다.
용신의 의미와 용신운에 대한 오해
오행 공부를 자신의 사주에 많거나 부족한 오행의 기운을 파악해서, 살면서 보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을 억부용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억부용신, 병약용신과 같은 용신이 있잖아요.
원래 용신이라는 용어는 월령용신을 말합니다. 사령용신 같은 것이죠.
시중에서 말하는 용신은 자기가 열심히 노력해서 극복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억부용신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억부용신을 물으러 옵니다. 그 용신운에 들어가면 잘되는 줄 알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습니다.
용신운이라는 것은 극복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대개 용신운에는 망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극복해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극복한다’는 뜻으로 용신을 사용하는데, 용신운에 들어오면 잘된다는 말을 누가 퍼뜨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사령용신과 구체적인 삶에서 사용하는 용신은 다릅니다. 그래서 사령용신과 억부용신을 나누는 것입니다.
어떤 오행이 너무 많거나 적으면 억부용신이라고 해서 재활하고 복구하고 교정하는 방식으로 설명합니다.
수극화가 억부용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흔히 병약용신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수가 용신이다”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수극화할래? 수생목할래?”라고 구체적으로 물어야 하는데, 그냥 수가 용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틀릴까 봐 “금수가 용신이다”라고 싸잡아서 얘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수극화가 용신이라면 계획을 다시 짜고 마인드컨트롤을 다시 하라는 뜻입니다.
토극수가 용신이라면 시대가 바뀌었으니 바뀐 시대에 맞추라는 뜻입니다.
목극토가 용신이라면 능력이 부족하니 능력을 더 개발하라는 뜻입니다.
금극목이 용신이라면 실수를 고치라는 뜻입니다.
화극금이 용신이라면 숙달하라는 뜻입니다.
금생수가 용신이라면 다가가서 공부를 더 하라는 뜻입니다.
수생목이 용신이라면 지금 있는 것이나 잘하라는 뜻입니다.
목생화가 용신이라면 성질을 부리지 말고 조직에 잘 맞추라는 뜻입니다.
화생토가 용신이라면 모든 일을 경력과 경험대로 하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인데, 명리학에서는 그 오행이 운에서 들어오면 무조건 좋아진다고 말합니다. 큰일 날 말인데 온 세상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상담에서 팩트를 받아들이는 태도
옛날에는 사무실에서 전화로 상담 예약을 받고 선별해서 상담했습니다.
만약 전화로 “용신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집에 가세요”라고 하고 전화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네이버에서 예약합니다. 낯선 사주가 많아요. 혼낼 수도 없습니다.
팩트를 이야기하면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데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심리학과에 가야죠.
여기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곳이지,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말을 들어주는 곳은 아닙니다. 심리학과에 가든지 일반 철학관에 가야죠.
왜 역학자를 찾아왔습니까? 원하는 대로 말해주는 곳으로 가야지, 왜 팩트를 얘기하는 곳에 왔어요?
요즘 제가 이렇게 친절합니다. 엄청 친절해요.
오행을 공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오행을 공부할 때 가장 효과적인 공부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기상을 알아야 합니다.
기상은 한난조습입니다.
한난조습을 기상으로 이해하지 않고 물상으로 공부해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상을 공부해 오라고 하면 꼭 물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기상이라는 것은 한난조습을 말합니다. 온도와 습도의 변화입니다.
온도에는 생사관이 있고 습도에는 생장관이 있습니다.
온도는 낳고 죽는 것,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습도는 크고 여무는 것입니다. 생장이고 성장관입니다.
사주가 습하면 긴 장마의 ‘장’을 보는 것입니다. 사주가 조하면 이루고 성장하는 ‘성’을 보는 것입니다.
따뜻하면 생하고 낳는 것을 보고, 추우면 마무리하는 것을 봅니다.
한난의 배합이 잘됐다는 것은 조후가 잘됐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마무리 시작하하는 기승전결의 개념이 잘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오행을 한난조습의 개념으로 익히고, 그다음에는 거기에 시간을 넣어야 합니다.
갑목이라는 것이 어떤 시간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를 봐야 합니다. 반드시 시간을 넣어야 합니다.
갑목이 자축을 만나면 갑목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인묘를 만나면 갑목은 꽃을 피웁니다.
사오미를 만나면 갑목은 아직 떫은 열매를 맺습니다.
신유를 만나면 갑목은 맛있는 열매로 변합니다. 열매가 된 것입니다.
해자를 만나면 갑목은 어디로 팔려 나가거나 창고에 저장된 종자가 됩니다.
자축을 만나면 갑목은 다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시간의 개념이 들어가야 합니다. 한난조습과 시간 개념이 함께 들어가야 합니다.
갑목은 한습한 곳에서 발생합니다. 만약 신유월에 태어났다면 따뜻하고 건조한 곳에서 태어난 것이잖아요.
이때 갑목의 처세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를 봅니다.
난조해야 하므로 난조한 기운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난조한 기운이 경금이잖아요. 경금으로 갑목을 쳐야 갑목이 난조한 기운을 받아들여 원활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것을 “갑목을 경금이 상극해서 죽이는 것 아니에요?”라고 말합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시간과 기상을 넣어 만물의 쓰임을 찾는다
한난조습과 시간을 넣으면 물건이 봄·여름·가을의 변화에 따라 어떤 모양이 되는지가 보입니다.
기상에 따라서 모양이 보이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보입니다. 그러면 보이는 일을 하면 됩니다.
사람이 자연에 참여하여 원래 정해진 법칙대로 하는 것을 희신이라고 합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는 것을 기신이라고 합니다.
기신이라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닙니다. 꺼릴 기(忌)라는 단어의 뜻일 뿐입니다.
갑목을 잘라서 경금이 일을 하잖아요. 그 일을 해서 완성품이 나오게 하려면 배합되어야 합니다. 정화와 경금이 배합되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오행을 한난조습으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시간에 맞춰 생장성멸을 터득합니다.
그다음에는 그것을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원리대로 하는지,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저는 임수에 태어났으니까 신임으로 희신이 되어 있잖아요.
내가 잘하는 것을 하는 게 아니라 해야 되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나는 해야 되는 것을 하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평상시 생활 태도에서는 해야 되는 것을 하겠습니까, 하고 싶은 것을 하겠습니까?
생활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직업에서는 해야 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항상 직업 활동과 생활 태도를 구분해서 설명해야 합니다.
나는 직업에서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니까, 평상시에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하겠죠.
자기 사주에 억지로 맞추지 말아야 한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세요?
이 쉬운 원리를 자기 사주에 억지로 맞춰서 응용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원리를 배우자마자 자기 사주에 억지로 갖다 꿰매서 응용까지 합니다. 그냥 원리대로 하면 됩니다.
공부가 퇴보하는 사람은 사주에 있느냐 없느냐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많다, 적다, 있다, 없다로만 판단하면 공부가 퇴보합니다.
또 “이것은 수생목이 된다, 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되는지를 말해야 하는데 된다, 안 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인지를 말하면 되는데 사람이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수생목이 있다면 그 사주의 수생목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말해야 합니다. 왜 된다, 안 된다고 합니까?
“해중의 갑목은 수생목이 됩니까?”라고 물어봅니다.
안 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방식으로 되느냐를 봐야 합니다.
“해중의 갑목은 정화를 생합니까, 못 생합니까?”라는 질문을 30년 동안 반복해서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수분을 먹고 살고 어떤 사람은 철을 먹고 사는 것처럼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보다 더 잘못된 것은 있다 없다로만 보는 것입니다.
없으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되고, 있으면 사용하면 됩니다.
어떤 것이 없으면 다른 것이 많을 테니 그쪽의 전문가라는 뜻입니다.
오행이 골고루 다 있으면 한량이라는 뜻이잖아요. 먹고 논다는 뜻이잖아요.
전문학교 앞에 가면 사주가 한쪽으로 쏠린 사람이 많습니다.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칼국수를 만들고 도로공사까지 다 할 줄 알아야 합니까? 사람의 몸만 잘 다루면 되잖아요.
그러려면 사주가 한쪽으로 쏠려 있어야 합니다.
많거나 부족한 것을 피해로만 보지 않는다
사주에 목이 많으면 도끼로 목을 잘라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목을 키워서 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밭에 콩을 만 포기 심어놓고 두 포기만 남기고 9,998포기를 모두 잘라내라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사주에 토가 많으면 땅이 많은 것입니다. 그것이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많으면 사용하면 됩니다. 왜 그것을 피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문화가 어디에서 생겼는지 참 희한합니다.
심리적으로 나쁘게 설명하거나 비꼬자면, 어떻게든 자기 사주를 나쁘게 인식하려는 것입니다.
자기는 운명적으로 힘들게 태어났고, 박복하게 태어났으며, 남에게 당하고만 산다고 만들어 놓으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제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제일 힘든 것은 용신운이 오면 잘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용신은 채울 것은 채우고, 뺄 것은 빼고, 다시 복귀하고 복구하라는 뜻입니다.
용신과 결혼에 관한 질문
“용신으로 결혼하는 것은 힘든 운인 거네요? 극복해야 하니까요.”
용신은 무언가를 복구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라는 뜻입니다.
용신으로 결혼했다면 나에게 부족한 것을 외부 사람을 들여서 채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말을 그렇게 비틀어서 얘기합니까?
“용신은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라고 했더니 곧바로 “용신은 힘든 것이다”라고 해석해 버렸잖아요.
말의 전달이 이상해진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고에서 할 일을 찾는 사고로
사람들이 운의 시작을 보려고 하잖아요. 결혼이 시작한다든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시작하면 반드시 잘된다고 말해줘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 것입니까?
운을 보고 시작하거나 멈추려고 하잖아요.
사람들의 사고가 ‘문제가 있어서 해결해야 한다’는 사고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사고로 발전하면 상담하기 편해집니다.
그런데 대개 상담하러 오는 사람은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자녀가 고등학교 3학년이면 입시를 치르고 합격하기 위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문제나 정체된 상황으로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상황을 악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잘못될 것이기 때문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가 아니라 해야 할 일입니다. 입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조금 과하게 말하면 몸에 암이 생겼을 때는 약을 먹고 치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병이라는 걸림돌을 해결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못 한다고 생각하면 직장도 다니지 못합니다.
물론 예시를 너무 확대해서 말한 것이지만 이러한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합니다.
간명과 추명의 차이
명리학을 잘 공부하려면 각 글자에 한난조습이라는 온도와 습도를 주입해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시간을 넣어야 합니다. 그것만 할 줄 알아도 보이는 것이 달라집니다.
오늘처럼 쌀쌀한 날에 찬물을 갖다주면 누가 먹겠습니까? 하지만 속이 타면 먹을 수도 있습니다.
찬물을 마시기는 하더라도 판매용으로 적합한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이러한 온도와 습도의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때에 맞게 하고 상황에 맞게 하며, 그것을 희기신으로 돌려 나중에 진로와 적성을 보면 됩니다.
이러한 이론을 공부하는 것을 간명이라고 합니다.
그 이론을 사람에게 대입해 벌어지는 상황이나 사건·사고로 설명하는 것을 추명이라고 합니다.
“언제 이사합니까?”라는 질문은 추명입니다. 그것을 알려면 월지를 알아야 하고,
“언제 결혼합니까?”라는 것도 추명입니다. 조후를 알아야 하며,
토극수 목극토를 알아야 임신과 배란의 시기를 알 수 있습니다.
순환상생상극, 만물의 생장성멸에 필요한 상생상극, 희기신상생상극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간명입니다.
이러한 간명법을 익힌 다음에 추명은 별도로 공부해야 합니다.
가끔 제자들이 “수생목을 어떻게 해석합니까?”라고 물으면 순환상생, 만물의 생장성멸, 희기신으로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는 언제 낳습니까?”라고 물어요.
수생목으로 아이를 낳는다고 선생님이 말했다는 것입니다.
간명과 추명은 완전히 다릅니다.
추명법은 간명을 기반으로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흔히 추명을 통변이라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통변은 저 사람과 내가 말이 통하도록 설명하는 것입니다.
추명을 잘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추명이 별것은 아닙니다.
“지금 무엇을 할 때다.”
“질문한 사건이 언제 일어날 때다.”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명리학 공부보다 추명만 요구하는 문화
우리나라의 사회문화는 명리학의 간명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명리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문화보다는 추명만 하도록 하는 문화가 되어 있습니다.
공부하지 않아도 말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운명 문화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러분이 명리학을 제대로 공부해도 하나도 써먹지 못할 수 있는 문화입니다.
통변만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 마음에 드는 답변만 하면 된다는 문화입니다.
우리도 통변식으로 방송하면 구독자가 10만 명까지 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것을 못하게 막는 것입니다.




이해가 잘되게 설명해주셔서 좋네요~~
감사합니다.~~즐거운 하루 되세요~~
명리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댓글은 사랑입니다.~~